경제학 방법론에 대한 미제스의 기여

김경훈 / 2022-02-25 / 조회: 5,050

2021년의 노벨경제학상이 보여주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경제현상을 적절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가설을 수립하고 실험이나 통계를 통해 반증 또는 검증하는 경험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방법은 자연과학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소위 ‘과학적 방법’이고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역시 진정으로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연구방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은 매우 지배적이다.


그러나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경제학에(그리고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도입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반대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형태의 과학적 방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 방법이 적절하게 사용되기 어려운 학문 분야는 분명 존재한다. 예컨대 수학이나 논리학과 같은 형식과학은 인간의 사고가 만들어내는 추상적 규칙들을 다루기 때문에 관찰이나 통계를 통해서 새로운 수학법칙이나 논리법칙을 발견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경제학의 연구대상인 경제현상과 인간행동은 분명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현상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해야 한다는 발상은 너무도 당연해보이고, 이를 반대하는 미제스의 주장은 유사과학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험적 검증 혹은 반증의 가능성을 현실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미제스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


경제학이 분명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다루는 학문임에도 미제스가 과학적 방법의 도입을 반대하는 근본적 이유는 이러하다. 자연세계를 다루는 학문과 인간 특히 인간행동을 다루는 학문은 범주적으로 서로 다른 학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두 학문의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은 특정한 경험적 사실을 대상으로 하고 그것들을 실증적인 방법을 통해 연구하는 소위 경험과학에 속하는 반면, 경제학은 기하학, 수학, 논리학 등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법칙을 연구하는 소위 형식과학이라는 것이다. 미제스와 오스트리아학파의 용어로 전자는 후험과학, 후자는 선험과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사칙연산 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경험과 사실을 근거로 검증하거나 반박할 수 없고, 모든 현실세계의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계산이나 삼각형들보다 논리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의 법칙들 역시 경험적 검증 또는 반증의 대상이 아니며 모든 경제현상보다 선행한다. 수요의 법칙으로부터 연역된 현존하는 시장 임금보다 높은 임금으로 설정된 최저임금제도의 도입은 언제나 비자발적인 실업을 초래한다는 법칙은 언제나 유효하다.


그렇다면 경제학의 진술과 명제들이 경험적으로 검증하거나 반증해야 하는 가설이 아니고 수학과 논리학의 법칙들과 같은 지위에 있다는 미제스의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의 논증을 여기서 면밀하게 살펴볼 수는 없다. 중요한 한가지 사안만을 지적해보자면 주어진 명제의 진위여부를 밝혀내는 경제학의 절차가 후험과학과 다른 반면, 선험과학과는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후험과학에서 가장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완성된 엄밀성을 갖추고 있는 물리학조차도, 지속적인 경험적 실험이 필요하고 가설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최저임금법의 결과 또는 화폐공급 증가의 결과 등을 설명하는 이론을 가설로 상정하고 검증하거나 시험하는 것은 어리석다. 시장 임금보다 높게 설정된 최저임금제도의 도입은 비자발적 실업을 양산한다는 명제는 그 어떤 경험적 근거로도 반증될 수 없는 동시에 현실에 대해 정확한 진술을 담고 있다. 시장에서 7000원으로 임금이 책정된 A는 최저임금이 8000원으로 설정된 상황에서는 영구적 실업상태에 놓인다. 이는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다른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없다” 또는 “빨간색인 물체는 동시에 파란색일 수 없다”는 진술과 동등하게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참이다.


이러한 필연성을 부정하면서 경험적 연구를 통해 법칙을 추론하려는 모든 시도는 잠재적으로 경험주의의 가정을 전제한다. 즉, 경제현실에 대해 유효한 모든 지식은 반드시 검증가능하거나 최소한 관찰 경험에 의해 반증이 가능한 경험적 지식이어야 하고, 그러한 경험적 지식은 우연적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실제로 관찰하기 전에는 예측할 수 없으며, 경제학의 명제들은 언제나 항상 가설적이고 진실성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의 관찰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경험주의는 자연과학을 다루는 데에는 적절할지도 모르겠지만, 경제학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경제학 명제들은 관찰 증거에서 유도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명제들이 논리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관찰에 앞서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행동, 그리고 행동에 함축되어 있는 가치, 목적, 수단, 선택, 선호, 비용, 이윤과 손실 등의 개념을 미리 알고 있지 않는 한 경제현상을 인과적이고 의미있는 관계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행동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신체적 움직임에 불과하고, 그러한 움직임이 의도를 가지고 수단을 활용해 목적에 도달하려는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요컨대, 경제적 추론은 행동의 의미에 대한 선험적 지식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현실의 경제현상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최저임금제도의 유일한 효과는 언제나 비자발적 실업임에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역에서 일시적 또는 항구적으로 취업률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최저임금제도의 효과를 상쇄할 만큼 충분한 노동수요의 증가 등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최저임금제도의 경제적 효과가 반증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미제스는 인식론 분야를 대폭 확장하고 현실세계 연구를 위해 응용했다는 점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일 뿐만 아니라 과학철학과 인식론에도 막대한 기여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순된 교리인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선험과학과 후험과학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이러한 차이가 인간 지식의 본성의 어떤 부분에서 기인한 것이며, 왜 경제학이라는 독특한 학문이 현실에 대해 의미있는 진술을 다루면서도 관찰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를 설명하였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미제스라는 거인 덕분에 자신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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