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선택의 시간: <노예의 길>

이용석 / 2021-02-05 / 조회: 1,646

내가 처음으로 이 책의 제목 <노예의 길>을 접한 것은 대학생 때였다. 당시 교양 수업 중 자유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논하면서 잠깐 하이에크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그때 소개된 책이 <노예의 길>이었다. 해당 수업에서 하이에크는 “완고하게 경제적 자유 그 자체가 선하다고 주장한 학자”로 소개되었었다.


그런데 자유기업원에서 겨울 독후감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이름만 들었던 이 책 <노예의 길>을 실제로 읽게 되었고, 하이에크에 대한 내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완고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가 어떻게 윤리적, 정치적 자유와 연결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철학자였다. 특히 “집단주의의 한 부류인 사회주의는 왜 ‘부도덕한 사회’를 만드는가?”에 대해 논한 부분(제10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코로나 19 이후의 세상을 고민해야 하는 지금의 우리가 깊이 반성해봐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와 개인주의를 대비시키며, 현대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개별 인간에 대한 존중, 즉 그 자신의 견해와 선호를 그 자신의 영역에서는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과 자신의 재능과 취향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하이에크, 2018. p.50.).


자유주의의 원리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완전무결한 윤리 규범의 불가능성”에 의해 옹호된다(같은 책, p.103.). 만약 어떤 기관이나 개인이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이 단순하다면 ‘통제’나 ‘계획’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너무 많아서 이 요인들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같은 책, p.90.). 이처럼 인간은 현실을 인지할 때 근본적으로 무지하므로 포괄적인 가치위계체계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개인의 영역”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가 사회주의를 부도덕한 것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주의가 인정하는 인간의 인식론적 불완전성은 “경쟁”이라는 ‘행위의 조정방식’을 통해 스스로 교정된다. 이때 시장은 어떤 가치가 더 나은 것인지를 판단하고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자동기록장치”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집단주의는 이러한 경쟁을 “통제”로 대체한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의 판단은 존엄성을 잃는다. 집단주의의 한 부류인 사회주의의 부도덕성은 “지향하는 목적들과는 무관하게” 이와 같은 “집단주의의 방법으로부터 초래된다.”(같은 책, p.73.)


예를 들어보자.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느슨한 목표들”은 일견 도덕적으로 보인다. “우리의 이웃을 도와야 한다”라는 도덕적인 주장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여기에서 “그러므로 적자를 보는 특정 ‘필수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도출한다. 전자의 명제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쉽게 후자의 명제에도 동의한다. 이런 방식으로 전체주의적인 통제는 확대된다.


그러나 “필수”라는 이름의 자의적인 가치 위계의 결정은 곧 자원이 필요한 다른 산업은 부당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진정 ‘수요에 따른 자원의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사결정자의 불완전하고 자의적인 오만함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사회 전체의 도덕적, 경제적 실패이다. ‘계획주의’는 도덕적 유토피아를 약속하지만, 실상 이는 부도덕과 불합리함일 뿐이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의 시대”가 자칫 ‘동정심’이라는 탈을 쓴 통제의 확대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 안전의 이름으로 개인의 영역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얼마나 증대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축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의 개입이 확대될수록, 코로나19 이후 개인의 자유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사회적 위기 속 약자를 위한 경제”라는, 일견 도덕적으로 보이지만 공허한 표어 아래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오만함과 불의에 눈감을 것인가? 오늘 자유에서 한걸음 물러나는 것은, 내일 스스로 삶을 결정할 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자조적인 삶과 부당함에 대한 타협 중 진정 도덕적인 것은 어느 쪽인가? 새로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 TOP

NO. 수상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10 대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김유미 / 2022-08-24
김유미 2022-08-24
9 대상 자유와 인플레이션
김기영 / 2022-08-24
김기영 2022-08-24
8 최우수상 프리드먼이 말한다, 통아저씨 게임을 멈추어라
문예찬 / 2022-08-24
문예찬 2022-08-24
7 최우수상 자유와 모두의 이익
천지현 / 2022-08-24
천지현 2022-08-24
6 최우수상 오래전부터 예견된 현실을 바라보게 하다: 선택할 자유
박용진 / 2022-08-24
박용진 2022-08-24
5 우수상 The Ultimate Legacy
이규종 / 2022-08-24
이규종 2022-08-24
4 우수상 살아 역동하는, 인체의 청년 세포, 선택할 자유를 외치다!
손병찬 / 2022-08-24
손병찬 2022-08-24
3 우수상 우리 앞의 리바이어던
손영승 / 2022-08-24
손영승 2022-08-24
2 우수상 인생은 초콜릿 상자, 정부는 샤워기 꼭지
오유민 / 2022-08-24
오유민 2022-08-24
1 우수상 오롯이 꿈꿀 자유
황이진 / 2022-08-24
황이진 2022-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