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파 경제학과 행동경제학: 합리성의 문제

Arkadiusz Sieroń / 2018-11-23 / 조회: 15,890

 

cfe_해외칼럼_18-207.pdf

 

 

*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임*
Arkadiusz Sieroń,
The Problem with Prescriptive "Rationality" in Economics
18 October, 2018

 


행동경제학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2002년 이스라엘의 경제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경제학에 심리학적 분석을 접목시킨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작년에도 카네만의 사상적 조류를 공유하는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그 영예를 차지했다.
주류경제학과 행동경제학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물론 궁극적으로 경제학은 그 시초부터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이같이 설명한다: "행동경제학은 인간들이 인지적 편향에 노출되어 있는 비합리적(not fully rational)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특별하지." 이같은 설명은 타당한가?


인간의 합리성 vs. 합리성 모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은 정확히 말해 신고전파 경제학의 ''합리성 모델''을 비판한 것이다. 카네만도 이 사실을 그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연구가 '인간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nomicus) 모델이 실제 인간의 행동을 잘 그려내지 못한다'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르다. 인간은 종종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게 행동하지만, 비합리적으로 행동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행동은 어떤 이론적 예측에서 이탈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가 인간이 어떤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외려 그 잘못된 예측이 기반한 '이론'이 오류일 수는 있어도 말이다.


버몬 스미스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손익의 불균형이 발견된다는 사실, 혹은 사람들이 위험 회피적이라는 사실은 비합리성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오히려 이는 인간들이 파산을 최대한 면하기 위해 내리는 결정의 산물이다. 관측된 개개인의 행동은 이익 극대화 모델과는 상충하지만 생존 모델(survival model)에는 부합할 수 있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월등히 중요하다. 다시 말해 표준적인 신고전파 모델의 예측에서 이탈한 인간의 선택은 진화론적으로 더 유리한 선택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인간이 정말 비합리적이라면, 인간이 어떻게 긴 세월의 진화론적 역사에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론가들이 손쉽게 가정하는 것과는 달리, 개개인이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순간순간은 불가해(不可解)할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사람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절히 적응해 온 조상들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지, 주어진 정보로 정태적 균형 조건과 확률 분포에 대한 최적을 일일이 계산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다: 추상적인 결정을 내릴 때 실수를 범하는 것이 정말 인지적 한계에 의한 '비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의 정식적 노력이 가지는 한계가 결국 인간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과연 인간의 정신적 자원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나?


인간의 정신적 처리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종종 범하는 오류들은 우리가 우리들의 많은 행동을—(역주: 의식적인 사고를 거치지 않고 하는) 일상적인 행동에는 오류가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몸에 배게(automate) 만드는 것에 대한 작은 대가다. 버논 스미스가 노벨상 강연에서 지적했듯,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인간은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모조리 계획하고 의식적으로 감시하는데서 오는 과중한 부담 때문에 하루도 살기 힘들 것이다."


개인의 합리성과 시장의 합리성


인간이 정말 비합리적이라 한들, 그 사실이 경제 이론에 모종의 변화를 가져오는가? 표준적인 신고전파 모델의 가정과는 달리, 사실 시장이 원할히 작동하기 위해서 인간은 합리적일 필요도, 전지할 필요도, 도덕적일 필요도, 지적일 필요도 없다. "인간이 이타적이지 않아도 그들의 행동은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버나드 맨더빌을 비롯한 스코트랜드 철학자들의 위대한 통찰을 떠올리자.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가 저녁상을 차릴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의 자기애에 호소하는 것이며, 우리의 필요가 아닌 그들의 이익에 호소하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그의 논문 <사회에서 지식의 사용(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에서 가격기구와 지식 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가격기구가 '지식의 효율화'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알맞은 행동을 취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수많은 지식들은 '가격'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격 덕분에 개개인이 실제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지식의 양은 현격히 줄게 된다. 다시 말해 완벽한 정보는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시장 과정은 정보를 정제시키고 창출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버논 스미스는 이같은 통찰을 심화시켜 "시장은 정보와 이해, 합리성, 중개인의 수, 심지어는 미덕까지 효율화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르멘 아키언이 <불확실성, 진화, 그리고 경제 이론(Uncentainty, Evolution, and Economic Theory)>에서 보였듯, 현실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 이면의 개개인의 의사 결정 과정이나 동기, 능력 등은 중요하지 않다. 이익은 가장 현명하거나 합리적인 자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쟁취하게 된다. 이는 지적 능력이나 개인의 합리성은 현실 경제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익은 무식한 바보들로만 구성된 사회에서도 창출될 수 있다.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더라도 경제는 표준적인 신고전파 모델에서의 균형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아키언에 따르면 '이익 극대화'라는 개념은 불확실성의 현실 세계에서 그 자체로 무의미하다.) 마치 진화의 법칙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진화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으로 환경의 변화가 한 유기체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할 수 있는 생물학자처럼, 경제학자들도 개개인이 합리적이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적응적이고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한다는 점을 묘사할 수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을 신고전파의 비현실적인 모델에 대한 대항마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드는 생각은, 이같은 사상적 조류에 편승하는 연구자들이 표준적인 신고전파 모델에 대한 변칙적인 사례들을 찾는데만 과도하게 열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지금껏 신고전파 모델로 했던 성공적인 예측을 모두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몇몇 행동경제학자들이나 일반적인 대중들은 신고전파 모델의 예측이 엇나가는 것을 모델의 한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증거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함께 버리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행동경제학자들이 호모 이코노미쿠스 모델에 실질적으로 반대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들도 '시장의 합리성은 개개인의 합리성으로부터만 달성될 수 있다'는 구성주의적 합리성의 뼈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리고 신고전파 경제학자들과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론적 모델의 가정처럼 경제 주체가 온전히 합리적이어야만 시장이 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시장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시장 참여자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동일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버논 스미스가 말했듯, 시장은 개별 경제 주체들의 손에 닿지도 않고 그들이 헤아릴 수도 없는 수 없는 정보를 '가격'으로써 함축시킨다. 다시 말해 구성주의적 합리성을 굳이 가정하지 않더라도 시장이 그 자체로 생태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취하는 행동의 본성과는 관계없이 시장은 균형으로 수렴한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의 '결점'을 탓하기 보다는, 어떻게 순진하고 단순한 그들이 한 줌 남짓의 정보와 나약한 지적 능력으로도 경제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번역: 조범수
출처: https://mises.org/wire/problem-prescriptive-rationality-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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