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설치의 딜레마

이인범 / 2016-11-09 / 조회: 2,264

나의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영등포역 부근은 1년 내내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지역이다. 과거부터 서울 서남부 교통 중심지의 역할을 해 왔으며 현재는 복합 쇼핑몰과 유흥상권이 늘어나면서 방문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버스노선도 많아지고 도로 및 기반시설이 확충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횡단보도의 부재이다. 영등포역 정문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영등포중앙로에는 약 350m에 이르는 구간 사이에 횡단보도가 하나도 없다. 단지 그 구간의 양 끄트머리에 하나씩 존재 할 뿐이다. 영등포 신세계백화점에 처음 쇼핑을 하러 왔을 때 느꼈던 이상한 점은‘이곳에는 횡단보도가 있을만한 데 왜 없을까’였는데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바로 지하에 있었다. 

영등포역 부근의 유동인구 증가와 함께 횡단보도 설치에 대한 민원 또한 꾸준히 증가해 왔고 그 결과 영등포 경찰서는 2012년 10월 14일 횡단보도를 설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영등포 지하쇼핑센터 상가연합회였다. 영등포역에서부터 영등포시장 교차로, 영등포시장 사이에는 제법 큰 규모의 지하상가가 있다. 현재 각각 영등포역, 영등포로터리, 영등포시장 지하 쇼핑센터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곳에 있는 점포 수는 대략 300여개에 달한다. 이 수많은 상가연합회 회원의 반발과 경찰의 결정이 충돌한 것이다. 몇 차례 갈등 끝에 결국 영등포역 앞에 하나의 횡단보도가 설치되었다.

이같이 횡단보도 설치의 딜레마를 겪은 곳이 비단 영등포 뿐만은 아니다. 종로, 명동, 강남 등 대규모 지하상가가 존재하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이런 문제가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상인들의 반대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문제가 되는 지역에서 반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다른 쪽으로 돌아가거나 지하도보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는 노인이나 장애인 같은 교통약자들에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다. 횡단보도의 부재로 시간적, 체력적 기회비용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효율을 강제하면서까지 설치를 반대할 당위성은 없는 것 같다.

횡단보도 설치로 인해 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대편으로 가기위해 지하로 내려온 사람들의 우발적인 소비에 생계유지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많은 사람들이 점포 앞을 지나다닌다고 해서 상인들의 매출이 당연히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가 앞 보행자가 많을수록 판매기회가 발생할 확률 자체는 높아지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상품에 돈을 지불할 유인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하여 우발적이 아닌 계획된 소비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횡단보도는 필요한곳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지하상가 상인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통행로를 독점하기보다는 경쟁력을 갖추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횡단보도의 설치로 지하의 유동인구가 줄어든다면 지자체는 상인들과 협의를 거쳐 임대료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고 시설정비, 홍보 등의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고정비용이 낮은 지하상가의 이점을 살려 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계단을 내려오는 불편을 감수하고도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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