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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광부]우리가 어찌 지옥을 이야기하리오

49 우원재 | 2016-10-18 | 조회수: 829 | 분류: 태백광부


CFE_뿌리찾기_광부들의 피와 땀 그리고 대한민국_토론2_우원재.pdf


태백시 철암 상방동에 가면 벽화마을이 있다. 1970년대에 '검은 노다지’라 불리던 석탄을 찾아온 사람들이 산등선을 따라 보금자리를 만들면서 세워진 마을이었다. 한때 제법 번창했던 이 마을은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오르며 텅텅 비게 되었다. 이후 유령마을이 된 이 곳을 벽화마을로 꾸미자는 한 작가가 등장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춰있던 철암 상방동은 광부들의 애환을 주제로 한 벽화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 곳곳의 벽에는 광부들의 삶이 그림으로 새겨져있고, 그 옆에 있는 글귀는 광부들의 삶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그중 가슴이 먹먹해지는 구절 몇 개를 옮겨본다.


태백 광부 아라레이

빚 없으면 돈 번게지, 몸 성하면 돈 번게지

자식보고 여기 왔지, 나 살자고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리라가 났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들놈은 광부마라

딸년도 광부마라

사택방은 닭장이나

꿈만큼은 궁궐.


시커먼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 검은 얼굴 사이에서 빛나는 눈빛. 담배 한 모금 피며 자식은 나처럼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살기 위해 갱도 속에서 우겨 넣는 주먹밥.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기 위해 험준한 산맥을 넘어 태백에 온 사람들이 매일 같이 수백 미터 지하 속으로 내려가 지옥과 같은 일터에서 땀을 흘리던 시절.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그 공간에서 삶을 개척하던 사람들. 벽화 속 그림이 자식들의 삶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시와 겹치는 순간 가슴이 아려온다.


태백의 광부들은 말 그대로 지옥을 헤쳐간 사람들이다. 전쟁 후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나라에서 삶을 개척하기 위해 그들은 지하로 내려갔다. 그들은 항상 다짐했다. 내 아들, 내 딸은 광부질 시키지 말아야지. 그렇게 그들이 캐낸 석탄으로 한국의 경제가 굴러갔다. 외국으로 수출되어 외화를 벌어오고, 그 돈이 쌓이고 쌓여 나라가 일어섰다. 삶을 이어가고자, 삶을 개척하고자 지하로 내려갔던 태백의 광부들은 굳은 바위를 깨부수며 닳아가는 곡괭이처럼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자식들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줬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저 아래 지하에서 피땀을 쏟은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상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사는 게 지옥 같단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렵고, 돈 버는 게 힘들어서 삶의 이것저것을 포기하면서 산단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N포세대라 불린다. 연애를 포기하고, 집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기타 등등. 그 고단한 삶에서도 포기하는 것 없이 악착같이 살아왔던 태백의 광부와 같은 사람들이 경제발전을 일으켜 선진국을 물려줬더니,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헬조선을 이야기 한다.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반 세기 전 이야기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시절을 살아갔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지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지옥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석탄가루를 마셔가며 노동했던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지하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삶들을 어느샌가 까맣게 잊고 있다.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이런 삶들을 그린 영화가 개봉하니 “토 나온다”며 이죽거리던 평론가도 있었다.


내가 어찌 태백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나.


우 원 재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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