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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와 책임 -신뢰 있는 저널리즘의 모색을 위하여-

112 한정석 | 2016-10-13 | 조회수: 2,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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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의한 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 월터 리프만의 <여론:Opinion> 中



문제의 제기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한 <2015년 연간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2015년 사이에 조정신청이 접수된 매체들 가운데 인터넷언론이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인터넷신문이 12,056건(세월호 단일 대량사건1,908건)으로 전체 조정신청의 45.1%를, 인터넷뉴스서비스사가 5,345건으로 20.6%를 차지한다. 침해유형의 약90%는 명예훼손이다.





<표1>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 주체별 데이터로서 2013~2015년간, 개인이 압도적인 가운데 2014~2015년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의 세월호 보도를 제외하면 기업체들의 조정청구가 그 다음으로 비중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표1>과 <표2>의 내용을 연계해서 정리하자면, 우리 나라에서 언론에 의해 권익이 침해되었다고 여기는 이들은 개인들과 기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2016년 4월, 광고주협회를 중심으로 기업홍보담당자 41명이 직접 반론기사를 작성하는 <반론닷컴>이 출범하고, 악덕 사이비언론 리스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기업 홍보담당자들이 언론들의 악의적 보도에 반발해 직접 반론기사를 작성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15년 12월17일자 <반론보도닷컴>이 보도한 'KBS 시사보도 프로그램 문제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몰이, 반기업정서 초래’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경영효율화를 위한 합법적 계열사간의 거래를 '기업일감 몰아주기’로 편파 보도한 내용에 대한 반박이었다. 


광고주협회를 중심으로 기업홍보담당자들이 이렇게 반론 기사를 쓰게 된 배경에는 방송법이 있다. 방송법 제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고 규정하면서, 제105조 제1호에서 “이 규정에 위반하여 방송편성에 관하여 규제나 간섭을 한 자에 대하여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방송의 자율적 제작과 편집권을 보호한다는 취지하에 한국방송광고공사를 미디어랩으로 운영한다. 즉 광고주는 공영방송사와 직접 광고거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규제로 인해 광고주인 기업은 비정상적이고 왜곡과 편파로 반기업적 방송을 하는 공영방송 KBS에 시정을 요구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누가 풀어야 할까.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 조항을 보자.


 헌법 제21조


⓵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⓶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⓷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⓸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언론중재위에는 기업과 시장경제 법익은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 헌법이 명시하는 언론의 자유는 원칙적으로는 국가의 불가침을 천명한다. 다만,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언론이 침해할 경우, 그 인지와 제제의 주체가 누구냐하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일 수 밖에 없으며,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정권고소위원회를 설치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언론의 보도내용에 의한 국가적 법익이나 사회적 법익 또는 개인적 법익 침해사항을 심의하여 필요에 따라 해당 언론사에 서면으로 그 시정을 권고한다. 시정권고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권고적 조치에 해당한다.


<표3>에서 보여지듯,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에 의해 침해되는 법익을 개인,사회,국가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 그 유형들을 정의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언론중재위의 침해유형별 시정권고 가운데 발표된 1981년 이후 현재까지, 국가적 법익의 침해에 대한 시정권고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인데 기사형 광고라는 유형으로 상당한 비중의 언론규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광고는 소비자에 민감한 제품들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들의 것이고 정부는 그러한 광고성 기사들이 진실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언론중재위는 시정권고 사항으로 기업에 대한 진실하지 않은 보도들은 다루지 않는 것일까.일단 이 문제는 뒤에서 검토하기로 하고, 언론중재위가 보호법익으로하는 국가적 법익 부분을 살펴보자. 


2010년 천안함 피격에 대한 음모론이 진보매체들을 중심으로 현저하게 등장했음에도 언론중재위는 그러한 보도들에 대해 국가적 법익의 침해라는 관점에서 시정권고를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석기 RO와 같은 사건에서 조차 대법원의 내란음모죄 유죄확정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에 대한 비난 기사들에 조차 언론중재위는 국가적 법익에 대한 시정권고를 하지 않아왔다. 이는 우리 사법부가 언론의 자유를 국가로부터의 자유라는 시각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언론의 자유에 미풍양속이나 사회적 질서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문제라는 이율배반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우리 헌법이 헌정의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반체제적 보도들에 대해서도 시정권고를 하지 않는 마당에 개인과 사회적 법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가 언론에 시정권고를 한다는 점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2011년 4월6일, 오마이뉴스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음모론으로 <서프라이즈>의 대표 신상철씨가 주장한 '어뢰 추진체에 붙은 동해안 붉은 멍게’론을 보도했다가 결국 대형 오보임이 밝혀져 사과했을 때, 이와 함께 음모론을 제기했던 <한겨레21>는 아무런 사과나 오보인정을 하지 않았으나, 언론중재위는 <한겨레21>에 대해 국가적 법익침해를 들어 시정권고를 하지 않았다.1)   


국가의 법익에 대한 문제는 정치적 사안이니 별개로 치더라도,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에 개인과 사회는 있지만, 기업과 같은 법인의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언론보도에 대해서 통제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고, 자유로운 경제질서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언론중재위는 언론으로부터 부당하게 공격받는 법인격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일까. 기업에게 법인세 납부를 명령할 때, 법은 기업(법인)을 인격체로 간주한다. 개인에게 명예가 있다면 법인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해야한다. 이 문제를 사법부가 관장하는 언론중재위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법이념은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지만, 정치와 경제에 대한 법이념에 대해서는 아직 법이 이념으로 확신할 만한 지식이나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러한 문제는 법이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를 의심케 한다. 동시에 언론의 자유가 진실을 밝힘으로써 그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게 한다. 언론의 자유는 어떻게 성립되어 온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규명되는 것일까. 우리 헌법이 천명하는 바처럼 단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그리고 공중도덕이나 사회적윤리를 언론이 잘 지키면 언론의 책임이 완수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과거로 거슬러 볼 필요가 있다.

                      

언론 자유의 이념적 배경과 약사(略史)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본원적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한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가늠하는 척도로서 언론의 자유는 종종 '민주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까지 인식된다.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가로부터의 자유에 속하는 소극적인 자연권적 기본권인가, 아니면 국가가 실현해야 하는 적극적 사회적 기본권인가. 이 질문에 대한 법철학적, 정치철학적 대답은 분명하지 않다. 만일 언론의 자유가 표현과 양심의 자유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신체의 자유처럼 자연권적 기본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국가성립이전의 자유’로서, 국가로부터 불가침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언론의 자유가 사회적 기본권에 속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복지제도처럼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사회적 설계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두 관점의 선택 여부는 언론의 자유와 그 한계로서 책임의 범위를 설정하는데 완전히 다른 질서를 구축한다. 즉 언론의 자유를 자연권적 기본권으로 본다면 언론에는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설정할 수 없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공정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언론에도 공정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누구나 저 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면 되는 것이고, 무책임한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널리 퍼뜨려도 문제될 것이 없다. 진실에 침묵하는 행위도 부작위할 자유에 속한다. 자유주의 언론관은 언론에 자유가 허용된다면 대다수가 진실에 침묵하더라도 누군가는 진실을 말하려 할 것이고, 무책임한 의혹을 반박하는 주장들도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자유로운 주장과 표현들이 공론화를 통해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진다는 생각이 공리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이성적 자유주의자의 낙관이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가 <자유론>의 저자 스튜어트 밀이었다.


스튜어트 밀의 이성적 낙관주의 자유언론관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벌어진 프랑스 시민혁명과정에서 저널리즘이 어떤 양태를 보여주었는지 고찰한 바가 없는 규범주의적 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 자유주의 저널리즘의 시작은 프랑스혁명시기를 그 기점으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이전에는 저널리스트라고 불릴 만한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프랑스 혁명기에 직업적인 저널리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이는 바로 선동에 탁월했던 의사 출신의 마라(J.P Marat)였다. 그가 창간한 <인민의 벗>은 자유의 이름으로 로비에스피에르에게 공포정치를 할 수 있는 여론을 창출했다. '반혁명 세력의 척결’을 내세운 <인민의 벗>에서 마라는 제거해야 할 대상들의 이름을 열거했고, 그가 지목하면 그는 혁명세력에 의해 단두대에 섰다 2) 이른 바 '9월 학살’을 선동한 마라의 <인민의 벗>은 프랑스 왕정이 1788년 <삼부회> 소집에서 '언론의 자유’를 부여한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었다3)흥미로운 사실은 1789년 프랑스인권선언에서 언론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프랑스 인권선언 11조-


프랑스인권선언은 언론의 자유를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로 천명하면서도,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함을 명시하며, 그 자유의 남용은 법에 의해 규정된다고 선언한다. 반면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처음으로 헌법에 명문화한 1791년 미국 수정헌법  제1조(The First Amendment)는 “연방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천부인권에 준하는 권리로 표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헌법의 언론자유가 지켜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는데, 1791년 수정헌법은 연방정부가 주정부들의 독립성을 해칠 수 없다는 선언적 의미였을 뿐이다. 언론에 대한 검열과 통제는 각 주마다 그 정도는 달랐으나 존재했으며, 실제로 대통령 링컨은 당시 합헌이었던 노예제를 헌법파괴로 폐지하면서, 이를 위헌행위라고 비판하는 남부 주들의 언론사를 강제 폐간시키기도 했다. 1차대전중에는 징병제에 반대하는 주장들을 주 정부와 연방법원이 탄압했다. 영국의 경우, 언론의 자유는 우리의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 영국은 현재도 영국왕실 폐지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처벌하는 법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최근에도 처벌이 있었다. 이 문제는 2003년과 2013년 영국 가디언지의 비판 대상이 되었으나 법무당국의 태도는 단호했다4또한 1986년에 제정된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 1986)에 의하면 종교와 인종에 대한 차별, 내란과 테러리즘 옹호의 경우  언론,출판은 규제되며 사전 검열도 가능하다.5) 


공포정치와 학살로 자유의 혁명을 외치던 로비에스피에르의 파리꼬뮨 역시 시민들의 저항과 여론 비판이 일자, 왕정이 폐지했던 언론 통제법을 3년만인 1792년 8월에 다시 부활시켰다6)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스튜어트 밀의 이성적 낙관의 자유주의 언론관이 '현실의 구체적 질서’(Concreat order of Reality)와 만날 때 보편적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러한 이유는 영국 스틀랜드 계몽주의의 데이빗 흄이 갈파한 바, '인간의 이성이란 언제나 욕망을 충족하려는 의지에 봉사하는 합리적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의지가 있으며, 그러한 의지는 자유롭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자유(Liberty)와 자유의 남용을 불러오는 자유의지(Will of Freedom)를 구별해야 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하며, 자유에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게 된다. 자유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신조하에 그 자체로 선언되고 전제되는 '절대적 가치’이며, 그러한 자유를 실행에 옮기고자하는 방법으로써, 개인이 갖는 자유로운 의지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수용할 수 있다면, 이제 언론의 자유와 책임도 사실은 언론에 종사하는 개인들의 자유의지와 책임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을 토대로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주목해야 한다.


자유와 책임면에서 한국 언론의 문제점 

- 정확히는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인의 수준과 자질 문제


1. 먹물주의 

0 유교적 전통하에서 도학자적 위상에 집착. 비현실적 담론, 반자본주의 성향 

0 자신의 직업과 작업은 시장가치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이라 여김 

0 상업주의에 대한 반감, 타락한 아리스토텔레시즘 


2. 속물근성

0 언론을 출세의 도구로만 인식, 미디어를 사내 정치로 사유화함 

0 미디어 권력을 이용해 공공의 이름으로 사익을 추구 

0 학연,지연 등의 기득권 네트워크를 통한 패거리즘


3. 기레기즘

0 성과주의에 함몰된 무도덕, 무소신 

0 자기 계발에 무관심, 스폰서 개발에 치중 

0 저널리즘의 기본을 무시


4. 운동권 너절리즘

0 팩트무시,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 훔치는 것은 당연 

0 진실은 이념에 봉사해야 한다는 '목적주의’적 사고

0 선동 마라저널리즘 

           

국민의 알권리란 '진실을 알권리’


언론의 자유가 전제되는 Liberty의 양태라면, 그것을 자유의지로 실행하는 '표현’은 한계를 지녀야 할 자유의지에 해당한다고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형법으로 죄인을 처벌하는 것에 대해 법학자들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보호법익을 침해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국가는 인간을 형법으로 처벌할 근거를 잃게 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게 인코딩된 어떤 결정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이 천명하는 자유는 언론,출판, 결사가 자유롭다는 의미인 것이고, 이를 표현의 자유로 해석하는 것은 자유와 자유의지를 혼동하는데서 오는 착오라 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의 한 판결을 보자.


"신문, TV, 라디오, 잡지 등 대중 보도 매체는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신속하게 보도할 의무가 있다" - 1986년 대법원 판결문 中-

1986년 대법원은 언론의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언론이 가진 사회적 기능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표방했다. 문제는 이 판결의 관점에서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에 대해 신속함 못지않게 '공정성’이나 '정확성’을 유지할 의무는 강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1986년이라는 민주화 열기의 시대 상황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국민에게 알권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알권리’인 것이지, 허위나 착오라도 상관없는 알권리는 아닌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회고해 보는 것은 의미가 깊다.

  

2011년 9월 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반론보도 청구소송에서 7개 쟁점 중 3개 사안을 허위라고 판단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로써 MBC PD수첩 제작진 전원은 무죄가 확정됐다.

 

쟁점은 ①주저앉은 소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 ②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광우병이라는 보도 ③정부가 월령 30개월 미만인 소의 SRM 5가지에 대한 수입을 허용했다는 보도 ④우리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보도 ⑤미국에서 광우병 발생시 우리 정부가 독자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보도 ⑥라면 스프, 알약 캡슐, 화장품 등에 의해서도 인간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보도 ⑦정부가 수입 위생조건을 졸속으로 개정했다는 보도 등 7개 부분에 대한 허위여부가 쟁점이었다. 이에 1심은 ①, ④를 허위로 인정, 정정보도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③의 경우 허위는 아니지만 반론의 기회를 주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②는 PD수첩이 후속보도를 통해 충분히 농림수산식품부의 주장을 보도해 줬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나머지도 "사실적 주장이 아닌 피고의 판단일 뿐"이라며 정정 또는 반론보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에서는 허위 부분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다. 재판부는 ④, ⑤, ⑦이 허위라고 판단했고 정정보도 판결을 선고했다. 또한 1심과 마찬가지로 ③의 경우 허위는 아니지만 반론의 기회를 주라고 판결했다. 나머지 청구는 기각했다.7)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사건은 다큐멘터리 제작의 전문가라면 대부분 이 방송에 심각하고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왜곡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취재 중 확인하지 못한 아레사빈슨의 사망원인을 MBC 제작진은 미국 취재에서 돌아온 이틀 후에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확인을 하지 않고 광우병에 의한 것인 것처럼 보도했기 때문이다. 만일 법원의 판단대로 MBC PD수첩 제작진의 방송에 허위가 있었다면 그러한 허위가 단순 착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중대한 실수에 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고의에 의한 것인지 정도는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충분히 그럴만한 근거’라는 이유로 면책을 시행했다. 대법원은 합리적 비판을 했던 전문가들의 주장을 모두 무시했다. 만일 지금 다시 판결한다고 해도 같은 법리를 적용할지 의문이 든다.


MBC PD수첩의 광우병보도는 수 많은 다른 언론사들로 하여금 과장과 날조, 허위의 융합적 상승을 가져왔다. 스튜어트 밀의 주장처럼 언론에 자유가 있다면 광우병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주장이 경쟁사인 KBS나 SBS에서 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MBC내에서는 PD수첩 제작팀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기자나 PD가 한 사람도 없었으며, KBS에서도 그랬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진정으로 합리적 이성의 공론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세월호 보도는 어땠는가. '학생전원구조'라는 오보를 처음 낸 MBN기자를 비롯해 메이저 언론들은 팩트를 구조 책임을 지고 있는 해경이나 상황본부를 통해 확인하지 않고, '전원이 구조되었단다’고 강당에서 말한 학부형의 주장을 '신뢰할 만한 근거’로 삼았다. 담당 데스크 역시 그렇게 올라온 상황보고에 대해 공식 확인 여부를 체크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단순한 속보경쟁의 문제점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후에 이 문제에 대한 공론적 반성이 있는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만큼 한국 언론의 자성력은 너무나 빈약한 것이 진실이다.많은 국민들과 언론학자들은 한국 언론의 맨 낯이 '수준미달’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한국에 언론의 자유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실일까.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이 유부남과 7시간동안 바람을 피고 있었다는 식으로 언론들이 보도해도 문제가 없었으며,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서 KBS보도국장에게 '살려달라’며 해경구조에 대한 왜곡보도에 대한 시정 요청을 해도 묵살이 가능한 나라였다. 세월호 보도참사가 언론자유가 없어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저널리즘에도 R&D가 필요하다, 공급체계 혁신이 필요


언론의 자유는 그 자체로 전제되나, 그 자유를 의지로 실행에 옮기는 자유의지에 책임이 따른다는 점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공진화시키는 방법은 현대 저널리즘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현대 저널리즘에는 저널리스트 개인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조하는 학파에서 공공저널리즘까지 대략 열 개의 이론적 유형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많은 저널리즘 이론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널리즘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정립하기가 어렵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한국 저널리즘의 진화적 탐색을 조건으로 프로페셔널 저널리즘과 서비스 저널리즘의 결합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  씽크탱크형 저널리즘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1) 프로페셔널 저널리즘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의 등장은 미국의 치열한 언론사들의 경쟁구도에서 등장했다. 문제의 제기는 언론이 다뤄야 하는 분야에 전문적 영역이 많음에도 정작 저널리스트들은 그런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며 체계적 훈련이나 지식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널리스트들이 보다 객관적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진단과 처방을 하는 의사로 비유된다. 현안에 대해 객관적 비평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균형감각과 정파를 초월해 권력을 감시하는 독립적 시민의 태도가 요구된다. 이러한 프로페셔널리즘은 정치적 진영논리를 벗어나 사실성에 충실한 보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저널리스트들의 직업적 진입장벽을 높이게 되고 저널리스트들간에 제 식구 감싸기와 집단주의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단점이 있다. 


(2) 서비스 저널리즘


서비스 저널리즘은 시민의 불만과 위험인지에 대해 시민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서비스 저널리즘은 대중들이 가진 합리적 무지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비스 저널리즘은 단순히 햔상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넘어서서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동원하여 제공한다. 서비스 저널리즘에서 독자 또는 시청자는 저널리스트의 고객이 되며, 시민들의 행동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데 방점을 둔다. 공적인 문제에 시민들의 참여가 무지로 인해 오해되거나 또는 지나치게 침묵되는 상황을 서비스저널리즘은 시민이 행동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해결한다는 점에서 저널리스트가 갖는 세계관이나 정치적 이념이 중요하게 된다.


(3) 싱크탱크 저널리즘 


싱크탱크 저널리즘은 일찍이 미국의 탁월한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만이 그의 저서 <여론: Opinion>에서 제시한 저널리즘의 한 유형이다. 리프만은 복잡하고 전문화된 현대 사회의 이슈들에 언론사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점을 주목하고, 해당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분석과 자료, 해설의 원천 소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오늘날 미국의 저널리즘은 이러한 싱크탱크 코멘테이터들의 활약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대개 교수들이 토론이나 인터뷰에 출연하지만, 싱크탱크 저널리즘은 이 보다 더 현실적 처방에 전문성과 경험적 지식을 가진 이들이 활약한다. 싱크탱크 저널리즘은 연구자인 동시에 스스로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는데, 미국의 해리티지와 브루킹스, 케이토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싱크탱크 저널리즘은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에 바탕하면서도 사회의 올바른 변화와 진화를 위해 시민들을 교육하고 저널리스트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한 점에서 싱크탱크 저널리즘은 일종의 저널리즘의 R&D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 언론시장이 전문화, 고도화, 객관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팩트와 자료, 여기에 관점을 제공하는 미국의 수 많은 싱크탱크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싱크탱크 저널리즘이 자리하려면 먼저 언론사에 대한 자본규제와 기업의 진입규제가 사라져야 한다. 좋은 언론을 갖는 길은 좋은 언론시장을 갖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언론시장의 규모가 크고, 거대 자본들의 유입을 자유롭게 만드는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휴먼캐피털인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투자와 교육, 그리고 저널리즘 R&D가 일어난다. 동시에 언론시장도 고급과 대중으로 차별화 될 수 있다.


나가며


한 나라의 국민은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처럼,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은 그 나라 언론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와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의 효용이 정치와 정책의 수준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처럼, 언론 역시 수용자의 수준이 공급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에 대한 국가의 정책방향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언론에 자유를 부여하면서도, 언론시장을 규제하는 정책은 확고하다. 언론에 자유와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방법은 언론인과 언론사 스스로 시장을 차별화해서 고급 저널리즘의 트리클다운 효과로 전체의 수준이 높아지는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현재 언론사들의 자본규모가 더 커져야 하고, 광고시장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광고시장이 커지려면 그 나라의 기업들의 수익성이 더 커져야 한다는 것과 해외기업과 자본들이 국내에 몰려들어 서로 경쟁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언론이 독자뿐만 아니라, 광고주들에 대해서도 클라이언트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서로 'Good Society'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길만이 최선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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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붉은 멍게´ 사과한 오마이뉴스, 한겨레는? <데일리안 2011.4.10>
2) 마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프랑스 왕정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로비에스피에르, 당통과 함께 프랑스 혁명의 3대 주요인물로 거론되었다. 그런 마라의 <인민의 벗>은  왕정이 전복된 1792년 9월, '정치범들이 반혁명을 꾀하고 있다’는 루머와 함께 이들에 대한 숙청 선동을 통해 3일만에 아베이 감옥등에서 무장 군중을 통해 성직자등 1,100명에서 1,400명을 학살했다. 희생자 가운데 원래 살해 대상이었던 반혁명 정치범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또한 비슷한 학살이 전후하여 각지의 도시에서도 일어났다. 그 희생​​자의 총계는 14,000에서 16,00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3)  당시 루이16세는 피폐해진 재정을 해소하고자, 귀족과 성직자들의 토지세를 증세하는 방안에 평민층들이 지지해 줄 것이라 믿었고, 그러한 논의를 공론화하기 위해 언론검열을 철폐했다.
4)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13
5) The Public Order Act 1986, as amended, from the National Archives.

6) The Invention of Journalism Ethics: The Path to Objectivity / Stephen J.A. Ward 2006 p74

7) Newsis 10월3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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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 석 |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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