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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말고’식 보도인가 ‘알고도 모른 척’ 보도인가

175 이문원 | 2016-10-11 | 조회수: 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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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된 언론조정·중재처리 청구 건수는 5,227건이다. '오보’로 추정되는 기사가 5천 건이 넘는다는 뜻이다. 이 중 피해 구제율은 77.9%이다. 절반이 넘는 기사가 오보로 판명된 것이다. 이 같은 '아님 말고’식 보도를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지켜봐야 할까. '자유’란 이름으로 무자비한 오보를 자행한 몇몇 언론들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부분은 2005년 1월에 제정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준해 일어난 상황을 말한다. 이 법률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하는 '반론권’은 1981년 제정된 '언론기본법’의 '정정보도청구권’, 이어 1987년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 그리고 다시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로 이어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4년여 간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된 조정 및 중재처리 신청건수는 각각 4657건과 142건에 불과했었단 점이다. 4년 치를 다 합쳐봐야 2015년의 청구건수에도 못 미친다.


아주 오랫동안 이 같은 문제는 그저 '인터넷’ 그리고 '포털사이트’의 문제로만 여겨온 바가 있다. 물론 그런 주장도 근본적으론 맞다. 특히 '가판’이 사라진 환경이 시장 내 자율적 사전중재(?) 구조를 무너뜨렸단 평가가 많다. 그럼 지금은 낯선 이 '가판’이란 개념부터 다시 살펴보자.

“흔히 가판으로 불리는 신문은 신문사가 처음 찍어내는 초판을 의미한다. 이 초판신문이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을 주변으로 가판대에 먼저 배달되기 때문에 가판이란 이름을 얻었다. 현재 10개의 종합일간지 중 국민일보와 문화일보를 제외한 8개 조간신문은 대략 초판부터 최종 서울시내 배달판까지 4∼7회 정도 판갈이를 한다.


지방분공장이 없는 언론사의 경우 지방 배달판은 서울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판수를 표시하는 번호가 빠르나, 지방분공장을 이용해 동시인쇄를 하는 언론사는 분공장이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거리가 먼 지역의 배달신문에 기록되는 판수가 빠르다.


시내판에 42판이나 45판이 찍혀 있다고 해서 42번이나 45번의 판갈이를 했다는 뜻이 아니며 판수의 단위가 10판 20판 30판 40판 정도로 변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합일간지 중에 판수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언론사는 한겨레로 한겨레는 통상 초판인 1판부터 시내판인 5판까지를 인쇄한다. 경우에 따라 5.5판 혹은 6판을 제작하기도 한다.


조간신문의 기사 마감시간은 일반적으로 오후 4시이며 이때 마감된 기사를 바탕으로 초판이 제작된다. 한겨레와 대한매일 등 지방공장이 없어 동시인쇄가 불가능한 언론사는 이 초판신문이 지방판으로 배달되기도 한다. 시험판 역할을 하는 초판이지만 기고나 고정면, 사설, 칼럼 등이 바뀌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초판에서 대략적인 그날의 신문사 논조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오늘 2001년 9월27일자 기사 ''가판신문’이란?' 중)


이처럼 2001년만 해도 '가판’, 즉 '초판’의 기능은 언론비평지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직 종이신문 닷컴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던 시점이고, 엄밀히 말해 포털사이트조차 태동기에 속했다. 인터넷신문은 딴지일보, 대자보 등 주로 좌익계열로 몇 되지도 않았다.


이 같은 초판은 문제가 될 만한 기사들을 미리 체크한 각 업체 및 기관 등에 의해 1차적으로 조정이 되고 난 뒤 배달판으로 반영됐다. 그러나 이 가판은 2010년 이전 모든 신문사가 그 기능이 더 이상 의미 없어졌다는 판단 하에 사라져버린다. 인터넷이 주도하는 환경으로 언론 전체가 옮겨가 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언론사는 수천 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무엇보다 포털사이트가 모든 언론들을 한 방 안으로 몰아넣는 기능을 담당하게 됐다.


이 시대부턴 자율적인 사전조정이 불가능하게 됐다. 일단 인터넷으로 기사를 '쏜’ 다음, 거기서부터 클레임에 근거한 조정이 이뤄졌다. 그러니 언론피해 구제 신청 건수도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2010년대 들어선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포털사이트 내에서 걸러지지 않은 보도들이 걷잡을 수 없는 범위로 유포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포털사이트와 전재계약이라도 맺지 않은 언론사들 기사의 경우 쉽게 '묻혀지는’ 상황이 벌어져 무시하고 넘어가던 것들도 SNS 환경에선 그렇게 무시할 만한 수준이 못 되게 됐다.


이제 2016년 현재 '아님 말고’식 기사가 범람해 언론중재위 조정이 늘어나게 된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미 광고주협회 등에선 인터넷의 성질을 이용한 중소규모 인터넷언론사들의 협박성 횡포, 즉 광고수주를 목적으로 한 협박성 기사 난립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몸살을 앓아 각종 토론회 및 성명서들을 발표해온 바 있다.


'언론’이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 그렇게 급조된 언론이 쉽게 유포되고 그만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환경, 그리고 자율조정 자체가 일단 '게재 후 협상’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 점 등이 이른바 '찌라시 언론’을 양산시키고 위와 같은 문제를 지금에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언론사 오보 릴레이 상황이 보여주는 '새로운 전선’


그런데 지금부터 하려는 얘긴 이처럼 미디어 환경이 바뀐 탓에 벌어진 일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언론의 '아님 말고’식 오보 상황이 이전에 비해 악화됐다고 보긴 힘들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 신문사 몇 개, 방송사 몇 개 정도였던 시절 상황과 이미 수천 개 이상으로 불어난 현재의 언론 상황을 같이 놓고 비교하기가 힘들다. 더 중요한 것은, 적어도 1990년대 이전 상황은 언론의 '권위’에 대한 사회적/심리적 압박이 심한 시절이어서 언론에 반박을 하며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상황 자체가 어색한 것이었을 정황이 많다.


그러나 유독 현재에 이르러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새로운 전선’에 대한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오보의 새로운 전선’ 말이다. 정확히 말해 이것이 오보인지 아닌지 가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들이 속출하고 있고, 언론중재위원회 차원을 벗어나 법정까지 해당문제가 도달해서도 명명백백히 상황이 판가름 나지 않는 상황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


다음은 필자가 직접 겪었던 방송인 김미화 관련 판결 상황이다. 필자는 애초 김미화 씨와의 재판에서 선정당사자로 지명돼 모든 법정심리에 참석했으나, 판결 직전 김미화 씨 측에서 토론자를 소 대상에서 누락시켜 판결문에선 언급되지 않았다. 다음은 해당 상황을 다룬 미디어워치 2014년 8월27일자 기사 '1심 판결문 읽어보니.. 김미화 주장과 달라’ 중 일부다.


“지난 21일 판결 직후, 김미화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판결났습니다! 물론 변희재에게 승소했습니다. 변씨가 저에게 '종북친노좌파’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 왜 1300만원이라는 댓가를 지불해야하는지의 이유가 '판결문’을 통해 전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김 씨는 22일밤 OBS '독특한 연예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종북이라는 또 표현을 갖다 붙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대중연예인이고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그런 어떤 색깔을 뒤집어  씌우고, 색을 입혀서 한 사람을 향해서 공격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그런 어마어마한 종북친노좌파 이런 것을 맘대로 십 수 년 동안 쓰면서 저한테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팩트에서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손해배상 해야 한다 라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중략)


그러나 8월26일 미디어워치 사무실로 배송된 판결문 전문에 따르면, 김미화 씨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살피건대, 선정자 미디어실크에이치제이가 미디어워치에 원고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하면서 원고에 관하여 “친노좌파”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보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원칙적으로 원고의 정치적인 이념 내지 성향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그러나 기사의 내용은 단순히 원고에 관하여 “친노좌파”는 의견표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위 기사의 내용, 그 기사가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 현재의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당해 표현이 가지는 의미 및 원고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임을 강하게 인상지우는 논문 표절 혐의 등의 사실적시와 결합하여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하여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친노좌파’는 의견 표명에 해당하는 것이니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 같은 게 아니지만, 부정적인 인상을 지우는 “사실적시”와 결합해 “친노좌파” 같은 단어가 나오면 명예를 훼손하거나 경멸적인 표현이 되니 인격권 침해가 된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결국 “'종북친노좌파’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라는 김미화 씨의 트위터 글은 사실과 다른 허위 주장이다.”


'알고도 모른 척’ 오보 상황은 이데올로기 진영논리에 함몰된 언론의 문제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건 바로 이 같은 '새로운 전선’의 문제다.


 한정석 편집위원의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크게 먹물주의, 속물근성, 기레기즘, 운동권 저널리즘으로 나뉜다. 자신의 직업이 시장가치로 평가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 먹물주의고, 언론을 출세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것이 속물근성” “또 성과주의에 함몰된 무도덕, 무소신이 기레기즘을 낳는다. 마지막으로 진실은 이념에 봉사해야 한다는 '목적주의’적 사고가 운동권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바로 위와 같은 상황, 즉 필자가 근무하는 사측에서 방송인 김미화 씨에 대해 '친노좌파’라고 말한 것이 과연 '아님 말고’식 언론의 오보 사태로 호도되는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한 문제다. 일단 판결문 자체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김미화 씨를 “친노좌파”나 “종북”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념 내지 성향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면서도, 이와 함께 김 씨의 논문 표절 등 부정적 인상을 지우는 “사실 적시”를 곁들인다면 명예훼손으로서 인격권 침해가 된다는 판결 말이다.


그럼 “친노종북 김미화 씨는 참 예쁘고 성실하시다.”는 괜찮다는 얘긴가?


그런데 이 같은 판결이 김미화 씨 본인의 언로를 통해 허위사실로 호도되고, 그 이전 언론중재위에 청구 신청된 “허위보도”에 대한 조정 요청으로 옮아간 상황까지도 같은 식으로 '아님 말고’식 오보 릴레이 일부라 보긴 힘들단 얘기다.


그리고 여타 경제산업 부문의 악의적 고의 오보와 달리, 이 같은 '애매한’ 새로운 전선은 점차 확대되고, 또 그 신청 건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위 김미화 씨가 말한 “허위사실 유포로 1300만원을 물어내게 됐다”는 부분이 그 자체로 허위사실 유포이듯, 주로 좌익 성향 언론들에 의해 이뤄지는 '진짜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피해 구제’의 문제도 새롭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정석 편집위원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론 자본의 개방과 확대를 통해 고급 저널리즘과 우수 인력을 유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저널리즘 수용자로서 판단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언론인들에게 정확한 해설과 정보, 분석, 데이터, 팩트를 제공하는 지식-정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포털의 미디어 권력과 경쟁할 언론 신디케이션 유도 정책법안 필요하다”고 밝혔다.


물론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문제가 되고, 또 문제가 확대일로에 있는 부분들은 이미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언론들이 벌이는, '아님 말고’가 아니라 '알고도 모른 척’ 고의 오보들이 향연이다. 이는 우수 인력 유입, 청소년 교육, 지식-정보 플랫폼 구축과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언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언론이 이데올로기적 패거리즘(?)에 이미 함몰돼버려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제시한 “미디어 권력과 경쟁할 언론 신디케이션 유도 정책법안”에 대해 관심이 크다.


이 문 원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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