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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인물기행] 가공적이지만 이상적인 삶 디오게네스

410 복거일 | 2015-06-16 | 조회수: 2,339

기원전 4세기 후반, 그리스 아테네의 거리 그리스의 맹주가 된 젊은 마케도니아 왕이 길가에 앉은 늙은 철학자에게 말했다. “소원을 말해보시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들어주리다.” 그 말을 듣자, 나무통을 집으로 삼고 청빈하게 살아온 그 철학자는 대꾸했다. “햇살을 가리지 않게 좀 옆으로 물러서주시겠습니까?” 뜻밖의 대답을 듣자, 왕은 측근을 돌아다보고 말했다. “만일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청빈한 삶을 예찬한 이 유명한 일화는, 아쉽게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고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다. 알렉산드로 대왕(Alexandros, 기원전 356~323)과 디오게네서(Diogenes, 기원전 400?~323)는 만난 적이 없었다.

기원전 338년 필리포스 2(Philippos, 기원전 382~336)가 이끈 마케도니아 군대는 그리스의 카에로네아에서 아테네와 테베가 중심이 된 그리스 연합군을 크게 깨뜨렸다. 필리포스는 동맹을 배신한 테베에 대해선 가혹한 벌을 내렸으나, 뛰어난 문화를 지닌 아테네에 대해선 놀랄 만큼 관대하게 대했다. 그가 아테네에게 요구한 것은 그가 그리스의 맹주임을 인정하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싸움터에서 죽은 아테네 병사들을 화장하고 그 시회(屍灰)를 아들 알렉산드로스로 하여금 아테네로 호송하도록 했다. 마케도니아의 가혹한 보복을 예상하고 겁에 질렸던 아테네 사람들은 필리포스의 너그러운 조치에 황공해서 알렉산드로스를 극진히 예우했다.

따라서 거리의 가난한 철학자를 만날 만큼 알렉산드로스의 일정이 한가했을 리 없다. 그때 알렉산드로스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물론 마케도니아의 왕도 아니었다. 그 뒤로 그는 아테네를 찾지 못했고, 기원전 334년 페르시아 원정에 올라 광활한 땅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빌론에서 죽었다. 그런 역사적 고증을 떠나서, 그 일화의 내재적 증거들에서 우리는 그것이 꾸며낸 얘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로 자기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은 경이적 존재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거리의 청빈한 철학자에게 내가 당신 소원을 들어줄 테니,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을까? 그 일화를 꾸민 사람은 디오게네스를 추어올리려는 뜻이 지나쳐서 엉뚱하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폄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의 묘미는 실은 그것이 꾸며진 얘기라는 점에 있다. 일반적으로, 꾸며진 얘기들은 사실들보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오히려 또렷이 드러낸다.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이에 오간 얘기들은 사람들이 청빈한 삶을 임금의 화려한 삶보다 높이 여기고 싶어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청빈한 삶은,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욕으로 칙칙한 얼룩이지지 않은 마음과 갖가지 재화들로 어지럽지 않은 삶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래서 디오게네스처럼 청빈한 삶의 즐거움을 말한 사람들은 늘 많은 청중을 가졌고,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월든, 또는 숲속의 삶 Walden, or Life in the woods(1854)처럼 그것을 그린 책들은 흔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청빈한 삶을 예찬하는 책들은 잘 팔린다. 경제적 어려움이 갑자기 커진 ‘IMF 시대엔 그런 책들의 매력이 특히 커진듯하다. 하긴 그것은 이번 위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하다. 그 동안 우리 경제가 빠르게 커지면서, 우리 사회는 모든 부면들에서 거품이 많았고, 청빈한 삶에 대한 동경은 그런 거품을 걷어내는 일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빈한 삶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은 거의 모두 삶을 편리하게 하거나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문명의 이기들이 없는 삶은 한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고되다.

인류 역사는 사람들이 갖가지 도구들을 써서 힘들고 지루한 일들로부터 벗어난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그저 먹고 사는 일보다 가치가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시간과 정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어떤 물건이든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그것을 버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 그 점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지금 수요의 급격한 감소가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 가리키는 것처럼, 청빈만으로 사회가 유지되거나 발전 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은 자신들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발전된다. 따라서 청빈을 예찬하는 얘기들을 우리는 많이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 특히 자신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조금도 버릴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물질 문명의 폐해를 들먹이는 사람들의 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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