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자신이 노력하기 나름이다.   - 마가렛 대처  

자유주의정보
많이 본 칼럼

[세계사 인물기행] 바른말 하는 신하의 상징 위징

409 복거일 | 2015-06-09 | 조회수: 2,635

대통령 앞에선 심지가 굳은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둘뿐이니, ', 각하 Yes, sir’'아닙니다. 각하 No, sir’. , '아닙니다. 각하는 대통령이 당신에게 무슨 불만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에만 쓴다.” 미국 백악관에 관한 이 얘기는 권력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보다 상대적으로 권한과 권위가 훨씬 크다. 성 추문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클린턴(William Jefferson Clinton)대통령의 처지가 잘 보여주듯, 미국 대통령은 갖가지 제약을 받는다. 한국 대통령은 그런 제약이 적어서, 실제로는 제왕의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지금 김대중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보다 훨씬 큰 권위를 누린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상징한 도덕적 권위에다 대통령의 실질적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금 김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의 덕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를 추종해서 그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나서, 자기 나름의 기반을 내세울 만한 사람은 드물다. 자연히, 지금 김 대통령의 둘레엔 자기 의견을 서슴없이 내놓을 만큼 심지가 굳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것이 직무인 사람들까지도 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의견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의 으뜸가는 정치 보좌관인 정무수석비서관이 야당 인사들에 대한 사정 계획을 미리 알지 못했고 야당과의 관계를 총괄하는 집권당 원내 총무가 사정 계획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다가 김 대통령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는 얘기는 그렇게 기반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의 옹색한 처지를 말해준다.

그런 상황은 큰 위험을 안고 있다. 대통령이 판단을 잘못했거나 무리한 결정을 내렸을 경우, 그런 판단이나 결정을 한 번 걸러서 바로잡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잡으려 하기는커녕, 모두 남보다 빨리 대통령의 마음을 읽고 대통령의 뜻을 실천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어지럽고 살벌한 현재의 정국도, 따지고 보면, 김 대통령의 결기 어린 뜻을 부드럽게 다듬을 만한 정치 보좌관이 없다는 사정에서 적잖은 부분이 나왔다. 게다가 일이 잘못되면, 중간에서 책임질 사람이 없으므로, 책임이 곧바로 김 대통령 자신에게 귀결된다. 이런 사정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하다.

특히 김 대통령에게 해롭다. 김 대통령이 집권한 지 반 년 남짓한 지금, 벼랑으로 몰린 야당이 그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물러나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은, 그런 주장들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일단 그의 지도력을 크게 훼손했고 그의 도덕적 권위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정치 분야에만 그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뜻에선, 그 문제는 경제 분야에서 더 심각하다. 모든 집권자는 궁극적으로 정치 논리로 경제 문제를 대하게 마련이다. 자연히, 그런 성향에 맞서 경제 논리를 내세우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치적 절충으로 끝나서, 여러 달 쌓은 경제 개혁의 성과를 단숨에 허물어뜨린 '현대 자동차 사태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만일 그때 심지가 굳은 경제 보좌관이 있어서 경제 논리에 따른 해결을 고수했더라면, 우리 경제의 형편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현 정권에 시장 경제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아울러 갖추고서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경제 보좌관이 없고, 바로 그 사실이 경제 개혁을 아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윗사람에게 직언을 잘한 사람으로는 당()의 위징(魏徵, 580~643)이 흔히 먼저 꼽힌다. 그는 당 태종(太宗)을 섬겼는데, 수십 차례의 상소를 통해 태종의 잘못들을 직간(直諫)했다. 그가 태종에게 권한 것은 어진 정치를 베풀고 군대를 동원하는 일을 줄이고 사치를 없애고 예교(禮敎)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의 직간은 때로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태종을 그를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기까지 했다. 그래도 동양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 꼽히는 태종은 위징의 간언이 옳음을 깨닫고 노여움을 풀곤 했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기록된 일화 하나는 이들 군신 사이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유목 민족의 피가 섞였고 유목 민족의 강건한 풍속을 좋아한 태종이 한번은 좋은 매를 얻고서 매우 사랑했다. 마침 그가 그 매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애완할 때, 갑자기 위징이 들어왔다. 태종은 급히 그 매를 품속에 갖추고 위징을 맞았다. 그는 임금에게 긴 얘기를 올렸다. 마침내 그가 물러나고 태종이 품속의 매를 꺼내보니, 매는 죽어있었다.

643년 정관(貞觀) 17년에, 그러니까 태종이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 지 열일곱 해 만에, 위징이 죽으니, 태종은 탄식하면서 말했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의관을 바로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로 삼아 성쇠를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득실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나는 늘 이 세 거울을 지녀서, 내 잘못을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가 깨어졌구나.” 이듬해 겨울 태종은 고구려를 치기로 하고 겨울에 원정군을 보냈다. 이어 645년엔 친히 고구려 전선에 나가 장병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안시성(安市城)싸움에서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원정은 실패했다. 마침내 회군하면서, 태종은 탄식했다. “만약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했을까?”

무엇이 위징으로 하여금 그의 임금에게 그리도 용감하게 간언하도록 했을까? 절대 권력을 쥔 임금과 마주한 자리에서 그의 심지를 굳게 만든 기반은 무엇이었을까? 위징은 본래 고조(高祖, 재위 618~626)의 태자 이건성(李建成)의 막료였다. 건성이 동생인 세민(世民)과 세력을 다투다 패해 죽자, 세민은 태종이 되었고 이어 위징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위징은 새 임금 아래의 삶은 덤이라 여겼을 터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는 건성이 죽었을 때 함께 죽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는 자신이 지닌 것들을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터이다. 바로 그것이 그의 기반이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솔제니친(Alexander Isayevich Solzhenisyn, 1918~2008)의 얘기는 음미할 만하다. “사람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지 않는 한, 당신은 그들에 대해 힘을 지닌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을 때, 그는 당신의 지배를 벗어난다. 그는 다시 자유롭다.” 모든 것들을 버림으로써, 위징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런 마음가짐보다 더 튼실한 기반은 없을 것이다. 위징의 그런 건너편엔 물론 신하들의 충언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태종의 위대함이 있다. 그런 위대함이 없었다면, 위징과 같은 신하들도 뜻을 펼 수 없었을 터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태종은 사람을 잘 보았고 출신을 가리지 않고 인재들을 등용했다. 그의 치세에 나온 명신들 가운데 그의 인척은 장손무기(長孫無忌)뿐이었고 원래 그를 따른 막료들도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정도였다. 위징, 왕규(王珪), 설만철(薛萬徹)은 건성의 속관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이정(李靖)은 원래 고조의 적이었고 봉덕이(封德彛), 우세남(虞世南), 배구(裵矩)는 수()의 항신(降臣)들이었다. 그리고 울지경덕(蔚遲敬德), 이적(李勣), 정지절(程知節), 대주(戴冑), 잠문본(岑文本), 저양(楮亮), 저수량(楮遂良), 온언박(溫彦博)은 모두 당과 세력을 다툰 군웅들의 막료들이었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출신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뽑아 쓴다고 하기는 어렵다. 직언을 하는 사람들을 둘레에 배치했다고 하기도 어렵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런 사정은 김 대통령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대통령은 나름의 기반을 가져서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의견들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로 전략적 직책들을 채워야 할 것이다. '가신(家臣)’들을 주요 정치 보좌관들로 삼았던 김영삼 대통령의 씁쓸한 경험이 그 점을 잘 말해준다.

 


페이스북 댓글 달기

의견 쓰기
댓글 등록

• 전체 : 418 건 ( 1/28 쪽)
NO. 제 목 글쓴이 작성일자 조회
418 [기고문]알파고와의 대국, 사람 본성 성찰할 기회였다.. 복거일 2016-03-21 1,762
417 [기고문] 아무도 하지 않은 鳥翼機 산업에 SAMSUNG이 .. [1] 복거일 2015-09-18 2,690
416 [기고문] 삼성의 신수종사업엔 `와우!` 할 만한 스토리가.. 복거일 2015-09-16 2,450
415 [기고문] 관료주의에 물든 삼성…지금 당장 새 변경을 .. 복거일 2015-09-15 2,437
413 [세계사 인물기행] 너그러운 분노 조지 오웰.. 복거일 2015-06-17 3,504
412 [세계사 인물기행] 참된 지혜 솔로몬·손변.. 복거일 2015-06-17 2,764
411 [세계사 인물기행] 역사적 평가와 시적 정의 이승만·김.. 복거일 2015-06-16 3,199
410 [세계사 인물기행] 가공적이지만 이상적인 삶 디오게네스.. 복거일 2015-06-16 2,339
[세계사 인물기행] 바른말 하는 신하의 상징 위징.. 복거일 2015-06-09 2,635
408 [세계사 인물기행] 21세기 정치가의 모형 토니 블레어.. 복거일 2015-06-09 2,535
407 [세계사 인물기행] 가장 성공적인 사람 아프리카 이브.. 복거일 2015-06-08 2,745
406 [세계사 인물기행]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조선인 .. 복거일 2015-06-08 3,193
405 [세계사 인물기행] 성공적 발명의 조건들 제임스 와트.. 복거일 2015-06-08 2,421
404 [세계사 인물기행]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 진시황제.. 복거일 2015-06-05 2,866
403 [세계사 인물기행] 로마를 대표하는 인물 가이우스 율리.. 복거일 2015-06-05 2,254

1 2 3 4 5 6 7 8 9 10 다음

검색 검색초기화